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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저장소
Exhibition Poster
기간| 2019.11.01 - 2019.11.14
시간| 11:30 - 18:30
장소| 인디프레스갤러리/서울
주소| 서울 종로구 통의동 7-25
휴관|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70-7686-1125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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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 저장소
    2019 장지에 연필, 목탄, 실 255×190cm

  • 종이
    2019 장지에 연필 21×25cm

  • 종이
    2019 장지에 연필 21×25cm

  • 종이
    2019 장지에 연필 21×25cm
  • 			김지은-공간이 머금은 시간과 몸의 흐름 
    
    흰색의 이합장지에 목탄과 연필, 지우개로 이루어진 이 드로잉은 명료성에 벗어나 있다. 흐릿하고 어둡고 지워진 여러 흔적들이 안개처럼, 성애처럼 퍼지고 끼여 있다.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한 상처들, 그리다 만 듯 알 수 없는 착잡한 경로들, 그릴 수 있음과 그릴 수 없음 사이에서 방황하는 손과 마음들이 가득 배회하는 공간이다. 실재하는 검은 실/선들 역시 포물선을 그리며 중력의 법칙에 따라 화면 아래를 향해 축축 늘어져있고 걸쳐져 있다. 그려진 선과 실재하는 선들이 공존하는 화면이다. 환영과 오브제가, 손으로 그려진 그림과 구체적인 물질이 길항한다. 그런가하면 주어진 사각형의 납작한 종이위로 시간의 층과 그만큼의 몸의 놀림이 얹힌 까닭에 공간은 비어있으면서도 충만하고 부재한듯하면서도 모종의 기운과 활력, 동세의 흐름이 자욱하다. 상당히 분위기 짙은 그림이고 매우 감각적으로 조율되고 있다는 인상이지만 동시에 애매하고 모호하기도 하다. 
    
    작가는 이 텅 빈 화면 안으로 잠수를 하고 있어 보인다.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m의 말처럼 "수영을 터득하기 위해 바다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것"과 같은 그런 그림 그리기를 연상시킨다. 빈 종이위로 선이 지나고 어둠이 깔리고 그래서 명암이 생기고 다시 그것들이 손이나 몸통(토르소), 손 등을 안타깝게 지시하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매우 작게, 마지못해 그려진 이 흔적들은 특정 대상을 재현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상과 무관한 것도 아니다. 두상, 토르소, 손 그리고 사각형의 여러 변주들은 허정한 공간에 드물게 놓였다. 우선 두상, 토르소, 손 등은 인간의 몸, 몸의 놀림, 마음의 경로를 암시해준다. 그것들은 모두 작가의 마음 안에서 싹튼 것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깥으로 유출시켜 그려내고자 하는 매개인 것이다. 마지못해 어떤 형상을 지닌 것으로 외화 되었지만 그것 자체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또한 화면 속에서 다시 그 화면 공간을 부단히 연상시켜주는 사각형 꼴/종이/책은 보이지 않는 힘의 개입에 의해 뒤척이거나 펼쳐지고 접히고 꺾이고 주름을 잡는 등 여러 표정을 짓고 있다. 바람과 숨결이 배회하는 듯하다. 그것들 역시 마치 살아있는 인간의 몸처럼, 살처럼 공간 안에서 실존하고 외부의 압력에 의해 변형을 거듭한다. 생물이나 무생물이나 모두 공간에서 스스로의 삶을 구현하는 모종의 상황, 주어진 공간을 채우고 있는 비가시적 존재와 함께 삶을 도모하는 인간/사물의 관계를 새삼 생각하게 해주는 그림이다. 
    
    여기서 종이라는 얇고 가벼운 물체, 피부라는 물리적 공간은 특정 장소를 연상시켜주고 그 장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여러 생의 부단한 자취를 떠올려준다. 따라서 이 그림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 사라진 경험들을 또한 추억한다. 흐릿하게 지워지고 흔들리는 이 처리는 '흔적'을 가져오려는 의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그것은 그려진 이미지를 다소 불가사의한 것으로 만드는 연출효과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특정한 공간 안에서 시간과 노력을 통해 몰입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그 지난한 노력에 대한 감정을 표현한 드로잉"이라고 말한다. 
    
    장지의 표면, 그 피부를 목탄으로 문지르는, 또는 연필 선으로 예민하게 긁어서 채워나가는 한편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생긴 흔적은 그리기의 불편함 혹은 불가능성을 토로하면서 진행된다는 느낌이다. 이 역설적 그리기는 선과 면, 그리고 그것이 칠해지고 다시 지워진 흔적을 통해 동시에 얼굴을 내민다. 그림을 그린 시간과 재료를 다루는 압력의 체적과 밀도로 인해 종이의 피부는 내파되어 보풀이 일어나고 이 밀린 흔적을 상처처럼 간직하고 있다. 그것이 그려진 그림과 동행한다. 이는 칠하고 벗겨내는 일이자 그리고 지우는 일이 그림의 내용을 만드는 것이며 종이의 물성, 상태 역시도 시각적인 내용으로 기능하는 부분이다. 종이의 표정이 그 위에서 부유하는 두상, 토르소, 손과 함께 무언의 메시지를 발화하는 것이다. 어떤 강렬한 움직임을 침묵 속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가 어렴풋하게 그리고 있는, 겨우 보여주는 것들은 몸을 망실한 두상, 그리고 얼굴과 신체의 일부를 상실한 토르소, 팔을 지운 손가락 등이다. 온통 검은색의 그림은 그 안에서 미묘한 톤 조절을 통해 회색에서 까만색까지 여러 색층과 질감을 길어 올린다. 손의 압력과 함께 마음의 강도를 고스란히 머금고 진행되는 이 선과 색채, 톤은 그림의 분위기를 지배하면서 그려진 것들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려 든다. 유사한 장면이 여러 종이에 연속적으로 그려진 것도 있고 큰 종이 안에 비슷한 소재들이 반복해서 출몰하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활동사진이나 애니메이션처럼 동적인 흐름을 안기면서 슬로우 모션으로 대상을 지각하게 해준다. 생성적이고 활력적인 움직임이 정적이며 텅 빈 화면에서 묘하게 일렁거리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사리지고 만 것들, 소멸된 것들, 애타게 흩어진 것들, 보았던 것들, 경험된 것들, 존재했다가 망실된 것들을 다소 힘겹게 보여준다. 사실 그림이란 그렇게 재현될 수 없는 것을 재현하고자 하는 덧없는 욕망일 수 있다. 대신 그 많은 어떤 흔적들을 머금은 레이어들만이 먼지처럼 가득하다. 
    
    상당히 감각적인 분위기를 드리우며 매혹적으로 부유하는 이 드로잉은 드로잉 자체가 얼마나 충분한 회화적 성취로 자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듯하다. 동시에 공간이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했던 시간, 그 시간과 함께 했던 무수한 몸의 움직임과 대상의 흔들림을 간직하면서 동시에 지금의 현존하는 시간의 힘을 내장하고 있는 상당히 복합적인 곳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에서 공간은 특정 장소가 되고 이 장소를 공들여 관찰한 것(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이 몸을 섞는, 지난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공존하는 상황)을 표현하려는 시도가 지금의 그림임을 표명한다. 그리고 그것은 불가피하게 그려질 수 없음과 그려질 수 있음, 아니 그려져야 하는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하는 그런 그림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더없이 몽환적이고 애매한 흔적으로서의 그림! 그러니 그런 성격이 보다 무겁고 어둡게, 더 강도 높게 펼쳐져야 한다.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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