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2025.10.15 - 2025.1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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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 화~토요일 11:00~18:00 |
| 장소| | A-Lounge 에이라운지/서울 |
| 주소| | 서울 종로구 부암동 239-9/2층 |
| 휴관| | 일요일,월요일 |
| 관람료| | 무료 |
| 전화번호| | 02-395-8135 |
| 사이트| | 홈페이지 바로가기 |
| 작가| |
윤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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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AFTERIMAGE 글 장진택(독립 큐레이터) 1. 평상의 순간은 어떤 계기로써 비로소 사건이 된다. 이들 사건은 따로, 또 함께 이합하고 집산하며 일련의 사유적 군집을 형성해 낸다. 해당의 무리를 이루는 집단의 실재는 자체로 하나의 ‘이미지(image)’이자 또는 개별의 ‘상(像)’으로 부유한다. 거칠고 견고하면서도, 한편 뜨겁고 유연한 속성을 안팎에 품고서, 단조(鍛造)된 형상의 구조는 그렇게 무언가를 발화한다. 의미란 이러한 기제로 스스로의 맥락을 활성화하는 것일 테다. 검고 무거운 한 줄의 획은 공간을 가로질러 시간을 수놓는다. 작가의 기억은 바로 그곳에서 결정되기를 택한다. 스냅샷(snapshot)의 경우와 같이 연출되지 않은, 따라서 자연스럽다 할 포착의 상태는 복제의 경로를 거쳐 이처럼 남겨졌다. 작업의 예술적 틀을 매개로 과거는 영원한 현재로 승화한다. 윤정민의 드로잉(drawing)은 말 그대로 행위이자 수행이다. 사진의 형식으로 돌이켜진 매일은 곧 다시금 구성된 장면으로 다시 선다. 특수과 일반의 교차 성립을 자명할 가능성은 아마도 그곳에 있었을 수 있겠다. 그로부터 그의 조각이 더는 범상한 무엇일 수 없음은 한층 확연해진다. 2. 개인의 상일(常日)과 연루된 주변적 일화들과의 조우는, 본디 그것의 실체가 그러하듯, 찰나로서의 운명과 제 궤를 같이하고 있음을 모두에게 상기하는 효과를 낸다. ‘기록(record)’의 취지는 흔적의 저장으로, 기호적 차원에서 일회적 경험을 보전하는 역할을 자기 완결의 근원으로 한다. 존재의 정조는 추상의 형상을 덮어쓴 채 각자의 일에 열중한다. 그것은 정지된 하나의 풍경이지만, 그 서사(narrative)의 추출 방향에 따라 창출된 목적성을 달리한다. 이상의 절차로 우리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준비를 마친다. 가족의 구성원들과 함께 보낸 일상은 윤정민에게 훗날 직조된 자료로서 또한 축적된다. 이 정보는 다시금 작가의 작업을 위한 소재로서 특정 기준에 따른 선별, 나아가 재구성의 과정을 지난다. 이때 가미된 상상의 정도는 평소 의식의 상례를 넘어선 층위로 관람의 주체를 (역시나) 자연스럽게 진입도록 하는데, 부인 그리고 아이와 함께 꾸린 세 명의 가족은 그와 같은 상황으로 이들을 합류케 하는 미적 매체로서의 필연한 복선(伏線)이자, 혹은 이와 관련해 자신의 내면을 감각의 단계에서 영사해 내는 무관한 맥거핀(MacGuffin)으로서 이중적 성격을 외연한다. 작가의 조각은 그처럼 관계로부터의 교감적 표상으로 남겨진 발화로, 때로는 직관스러운 태도 그 자체를, 때로는 문학적인 은유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이로써 윤정민이 가족이라는 규모(scale)의 구성원이자 사회라는 세계의 당사적 위상을 동시대의 맥락에서 규명하려는 지점은 분명 유의미하다고 하겠다. 3. ‘우리’라는 이름으로 이룩한 공동체적 합의의 집체란 과연 신비롭다. 이는 계약의 형식을 앞세운 일종의 믿음 체계로서,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그 질서의 측면에서 인간이라는 국면으로 전환한다. 작가의 드로잉 조각들이 그러한 상호성을 양식화한다면, 문지르듯 그가 그린 평면 채색화들은 심연의 영역을 투사한 감광면의 그것과 유비하는 무엇과도 같다. 인물들의 표정은 무의식적임으로써 크게 자유롭다. 원초적인 시공에서 서로는 서로의 지지체가 될 것을 기꺼이 자청한다. 거창함을 의도하지 않더라도 사랑의 크기는 무한할 것이므로, 안심스럽다. 그리하여 사소한 감정에의 휘둘림에 더는 연연치 않은 채로, 진정한 ‘우리’의 모습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삶은 본래 그런 관계의 실상을 다시 확인하기 위한 여정의 순환인 것은 아닐까. 윤정민의 전시 《우리》(2025)는 바로 그러한 상호 관계의 근원을 되묻는 장이자, ‘공존’이라는 존재의 근원을 다시금 감각게 하는 깊은 성찰의 주요한 잔상(afterimage)이 된다. *출처: 에이라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