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보




HAPPY LOSS 김줄 개인전 도시에 밤이 내리고 창문 밖 빌라도 멀리 있는 산도 모두 잠자러 가면 나의 방으로 시체들이 찾아온다. 고양이 모양을 한 나의 빈 곳으로 차곡차곡 겹쳐 눕는다. 다정한 시체들의 밤. 로드킬 당한 길고양이로 시작해서 함께 살던 고양이와 가족들에 이르기까지, 그림 속 고양이와 꽃들에는 그동안 통과해 온 죽음과 그로 인해 겪은 감정들 이 겹쳐있다. 가까웠던 존재의 죽음은 비탄을 불러일으키기 쉽지만, 내가 그린 고양이의 시체들은 특별한 감정을 자아내지 않고 그냥 거기에 놓여 있다. 모 든 의미나 판단이 제거된 채 텅 빈 공간을 응시하는 커다란 동공처럼. 거대한 생물학적 사이클의 관점으로 보면 죽음은 소멸의 과정에 불과하다. 힘차고 부드럽게 움직이던 신체는 썩거나 불에 타 사라지고 총명하게 반짝이던 정신은 어디론가 흩어져 보이지 않는다. 슬픈 일이긴 하다. 하지만 죽음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억지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사후세계란… 죽은 이들에 대한 기억으로 축조된 것이 아닐까? 내가 죽은 누군가를 떠올리는 순간 산산이 흩어져 감지할 수 없던 그의 몸과 정신의 조각들이 내 안 어딘가에 서 재조립 된다. 그리고 나의 일부가 되어 나와 함께 계속 살아간다. 10년 넘게 키우던 고양이가 췌장염에 걸려 일주일 남짓 앓다 떠났을 때, 북받치는 설움 속에서도 슬며시 떠오르는 문장 하나가 있었다. 그 문장은 고양이 가 죽으면서 나에게 남긴 마지막 전언이라도 되는 양 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행복하기를 선택하기’ 투병 중 중요한 몇 번의 기로에서 내가 내린 잘못된 결 정이 그 작은 아이의 죽음을 재촉한 것 같다는 죄책감이 들겠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행복하기를 선택해야만 한다. 철학자 로지 브라이도티는 저서 <포스트 휴머니즘>에서 인간 존재를 근대적 개념인 개별적이고 독립된 자아가 아니라 타인과 비인간, 환경과 얽혀 끊임없 이 변화하는 유기적 존재로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죽음 역시 삶과 죽음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에서 본 단순한 종결 상태가 아니며, 살아있는 사람들과 기억, 기록, 유전정보 등을 통해 새롭게 관계 맺으며 지속되는 또 다른 형태의 존재 방식이다. 나의 고양이는 죽음으로써 더 이상 나와 분리된 존재가 아닌 내 인 식의 일부가 되었다. 그만큼 나의 정체성도 확장되었으니, 나는 슬퍼하거나 불행해 할 필요가 없다. 물론 계속 슬프거나 불행해 할 수도 있다. 고양이가 죽 음을 통해 나와 새로운 관계 맺기를 했다고 그가 겪은 고통이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단지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연가시가 감염된 숙주를 물가로 이끌듯 내 안의 고양이가 나를 조종하는 것만 같았다. 행복하라고. 행복해지기를 선택하라고. 자기가 겪은 고통이 헛되지 않도록 자신의 몫까지 최 선을 다해. 죽음을 테마로 작업하면서도 허무하거나 쓸쓸한 정서보다는 행복한 뉘앙스를 주고 싶었다. 그림 속 고양이들은 완만하고 둥근 형태로 편안한 포즈를 취하 며 꽃들은 강한 대비와 비비드한 색감으로 폭발하듯 피어난다. - 작업노트 中 *출처 및 제공: 김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