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보




물길 신명철 누군가 저 강물에 빠져 죽었다던대. 아니 빠졌을 때 강이었지만 죽었을 땐 바다였을 지도 모른다. 강물의 일은 떠나보내는 것이라. 뜬소문이 남은 자리 발을 담근다. 정지하고 있어도 걸음이 흘러 나간다. 누구든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던대. 분명 멈췄지만 멈춘 게 아니라니. 내가 걷던 길이 떠밀려 온 것 마냥. 상류에서 흘러온 것과 섞인다. 강에 비친 얼굴은 내가 아니구나. 물결에 일그러지며 여러 얼굴들이 겹친다. 익사한 표정은 저수지였다가 바다였구나. 나는 웅덩이에서 호수였는데. 강물이라니. 언제부터 바다가 호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가. 강물에 빠져 죽은 것은 다행일지 모른다. 강에 유해를 뿌리는 것은 불법이라서. 바다는 되지만 강은 되지 않는 것이라서. 김연홍의 이번 개인전 〈Paper Street〉은 지도에는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거리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오래도록 ‘어디에도 없지만 있을 법한 길’에 주목해왔으며, 이를 통해 현실과 비현실, 기억과 상상의 경계를 탐구한다. 전시의 화면에는 바람과 파도, 지형선, 나뭇잎의 흔적처럼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풍경의 조각들이 겹쳐진다. 투명한 겹침과 우연적 연결은 관객에게 긴장과 흔들림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며, 마치 어디에도 없는 길을 걷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러한 화면은 단순히 자연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감각적 흔적을 회화적 언어로 다시 호명하는 과정이다. 서문을 쓴 신명철은 이를 두고, 강물처럼 흐르고 사라지지만 결코 멈출 수 없는 길 위에서의 체험이라고 말한다. 김연홍의 화면은 현실과 허구가 교차하는 공간 속에서 존재와 부재, 기억과 망각이 맞닿는 순간을 기록한다. 이는 결국 관객으로 하여금 ‘존재하지 않는 길’을 다시 걸어보게 만드는 경험으로 확장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금까지 축적해온 ‘흔들림과 겹침의 회화’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며,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풍경 속에서 또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 서문: 신명철 · 포스터 디자인: 샴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