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보
화이트 큐브 서울의 개관을 맞아 열리는 전시 «영혼의 형상(The Embodied Spirit)»은 철학, 형이상학, 인간 행동의 동기를 탐구하는 여러 작품을 모아 한자리에 선보인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에세이 ‘영혼에 관하여’(B.C. 350년경)에서 논한 육체와 정신의 불가분성은, 연속선상에 있는 물질과 정신의 관계를 해석하며 인간 존재의 신비를 파헤치는 작품을 선정하는 단초가 되었다. 크리스틴 아이 추의 회화는 다양한 영적인 관념과 정서적 상태를 탐구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무아경에 가까운 경지에 들어가고, 그녀의 표현을 빌자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합일을 지향한다. 인간과 자연을 잇는 끈을 찾는 그녀의 직관이 이끄는대로 섬세한 색의 파편들이 화면 위에서 폭발하고 산산이 흩어진다. 2020년작 < Cryptobiosis >에서 (‘크립토바이오시스’란 열악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유기체가 극단적인 비활성 상태에 이르는 것을 뜻한다) 아이 추는 ‘거의 모든 움직임을 중지하고, 미래에 대한 확정적인 목표를 내려놓는 데서 삶의 연장과 밝은 희망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마르게리트 위모의 광범위한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는 수수께끼 같은 인간의 삶 그리고 죽음 그 이후의 문제다. 위모의 조각과 그림은 이른바 ‘개인의 죽음과 인간종 사멸에 대한 인식’을 다루며, 인류의 종식 이후 세계에는 어떤 형태의 존재들이 등장할 것인가를 작가가 상상하여 구현한 결과물이다. 그 중 < The Guardian of Termitomyces >(2023)는 흰개미집에서 영감을 받은 토템의 형태를 하고 있다. 하나의 흰개미집이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개미가 함께 힘을 모은다. 작가는 ‘우리의 미래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길잡이를 이와 같은 공동체적 협력에서 찾고 있다. 루이스 지오바넬리의 그림은 감정의 고조, 의례, 종교와 종교적 도상을 탐구한다. 젊은 여성이 성만찬을 하는 모습이 담긴 70년대 영화의 한 장면은 경건한 경외심, 극한의 희열, 에로틱한 황홀경 사이 어딘가에 있는 주인공을 그린 여러 작품에 영감이 되었다. 이미지 전반을 지배하는 애시드 옐로우와 그린 색조는 한 물질이 다른 물질로 바뀌는 실체변화(transubstantiation)의 과정에서 비롯된 인식의 변화를 암시한다. 이진주 작가의 그림은 우리의 기억과 인지의 심리적 과정에 대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천에 직접 안료나 먹으로 채색하는 전통 한국화 기법을 사용해 인물의 손이나 뒷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해내는데, 작가 자신의 사적 서사와 주관적 관점에서 인지되는 디테일에 집중한다. <블랙페인팅> 연작에 관해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많은 사건과 상황들이 어둠 속에 감춰진 채 아직 발현되지 않은 구조를 드러낸다 [...] 나는 손이 사람의 얼굴처럼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트레이시 에민은 인간성의 근본 요소에 대해 가혹하리만치 정직하게 파고든다. 영적인 자각과 내세는 에민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이며, 그녀의 회화와 드로잉은 사랑, 욕망, 상실, 슬픔에 관한 상념들로 가득하다. < I Have to Keep Living >(2022)에는 침대처럼 보이는 구조물 위에 뒤틀린 자세로 누워 있는 여자의 윤곽이 있다. 그 아래 흡사 유령처럼 보이는 형상들은 여인이 심적으로 매우 괴로운 상태에 있음을 암시한다. < The Next Journey >(2023)에 등장하는 인물은 석관 모양의 침대 위에 누워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딘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카타리나 프리치의 조각은 직관적 의도로 가득 차 있다. 작가는 한눈에 봐도 친숙한 사물이나 형상에 강렬한 단색을 입히거나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크기로 대상을 확대해 모호하고 신비로운 존재감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 인간 실존에 대한 매우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2020년 작 < Hand >에서 작가는 평평한 받침대 위에 손바닥이 드러나게 편 손 하나를 올려두었다. 정교한 디테일은 실제 사람의 손을 방불케 하지만, 무광 블랙 마감이 비현실적 아우라를 풍긴다. 많은 의미와 연상의 실마리를 함축한 작품이다. 버린드 드 브렉커는 종교적 도상에 그려진 인간의 연약함에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체를 부여한다. 신화, 옛 거장의 명화, 기독교 전통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은 형상들은 비틀리고 일그러진 채 삶의 비애를 집중 조명하는데, 그 시선은 현대적이다. 팬데믹이 세계를 휩쓰는 중에도 환자를 돌본 간호사와 간병인들의 따뜻한 헌신은 < Arcangelo > 라고 이름 붙인 연작의 영감이 되었다. < Arcangelo Glass Dome II (2021–23)의 하이브리드적인 인간 형상을 감싼 부드러운 모피는 연약한 몸을 위한 보호의 은유를 확장한다. (출처 = 화이트큐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