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2023.09.13 - 2023.1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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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 12:00 - 18:00 일요일은 예약 방문만 가능합니다 |
장소| | 마테리오 갤러리/서울 |
주소| |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94길 27-15/8층 |
휴관| | 월, 화요일 |
관람료| | 무료 |
전화번호| | 02-566-5310 |
사이트| | 홈페이지 바로가기 |
작가| |
양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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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수정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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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다중선 그리기≫에 부치는 이 서문은 수차례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글을 짓는 일은 머릿속을 부산하게 떠다니는 생각들을 쌓기보다는 쓸어내는 과정에 가깝다. 어떤 생각을 치우고 나면, 그것은 곧장 휘발하는 게 아니라 간간한 이음새만 두고서도 다른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흡사 내적 스트레칭을 하는 듯이 의식 속의 공간에서 생각의 가동범위를 점차 늘려가는 일은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중에도 면면히 분수령을 이루면서 흐른다. 그렇게 사유는 떠다니거나 떠내려간다. 그것은 정지해 있다가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으며, 한데 엉겨 있으나 어느 틈에서 터질지 모르는 긴장 상태이자 세계에 존재한다. 아니 잠재한다. 양문모의 회화는 여러 겹의 상태가 잠재하는 성질의 추상적 표현들로 점철돼 있다. 추상이라는 표현 형식은 그 자체로 무한히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나는 글을 쓸 때 한 문장 다음에 올 문장을 선택하는 순간을 그가 거쳤을 작업의 과정에 대입시켜 보았다. 그의 회화에는 다양한 색이 능란하게 사용되며, 부분적으로 뒷면의 채색이 앞면에 드러나기도 하고 앞면에 겹쳐 올린 물감이 압도적으로 짙게 발색하기도 한다. 형태는 거침없이 그려진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유달리 도드라지는 구석 없이 점진적인 움직임을 따른 듯한 느낌을 전한다. 작가는 “서로 다른 관점의 충돌에서 파생되는 결과물을 캔버스 위에 남긴다.”[1] 이러한 그리기는 비계기적 생각들의 연접을 통한 글쓰기에서처럼, 붓질의 중층적 국면을 새로운 응시와 자각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그의 태도와 맞닿는다. 작가가 전시 제목으로 삼은 ‘다중선 그리기’는 오토캐드에서 건축도면을 그릴 때 많이 사용하는 기본 명령어로 사용자가 작도하는 중심선을 기준으로 여러 개의 선을 동시에 그려 넣으며, 일반적으로 도면의 기초가 되는 벽체를 만든다. 다중선(Mline)을 현실의 환경적 조건에 예속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면, 그것이 사실 가상 공간에 떠 있는 채로 무한한 경우의 수를 동반한다. 획과 획 사이의 충만한 잠재성, 돌발 가능성은 그가 회화를 바라보는 동시에 만들어가는 창의적 조건이 된다. 그의 그리기는 선택과 동시에 중지되는 수, 그리고 중지와 동시에 이어질 수가 그림에 되먹임되며 추동된다. 이러한 양문모의 회화적 전략은 1인칭적인 인격성을 적극적으로 밀어낼 때 획득될 수 있는 일종의 사물화된 시점에서 기인하며, 그리는 행위와 바라보는 시점 사이의 존재론적 우위를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가는 듯 보인다. 이를테면 전시장의 정면 중앙에는 여섯 점의 회화 <성직자/주술사/탐험가/원주민/선교사/후계자>(2023)가 서로 맞붙어 배치되어 있다. 이 연작은 칠교놀이에 사용되는 조각들을 임의로 조립하고 분해해 보았던 작가의 경험에 착안한 것으로, 미술사적으로 전형화된 추상회화와 유비해서 봤을 때 일견 기하학적 추상의 외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표면 위로 떠오른 층들은 응집했다가 흩어지고, 가벼움과 함께 무거움을 자아내며 상호 교호 작용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순수하고 절대적인 조형 원리에서 미끄러진다. 그리고 아마도 작가가 무심히 제목으로 붙였을 여섯 가지 인간 유형은 흥미롭게도 세속인과는 정반대의 위치를 점한다. 어쩌면 이러한 언표는 종래 미술의 형식에 구애되지 않으면서 창작에 대한 관념에 얽매이지도 않는, 행위자인 동시에 수신자로서 회화를 탐색하는 양문모의 태도 또는 관점을 다시 한번 뒷받침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밖에 작가가 꾸준히 다루는 드로잉, 조각, 영상 작업들 역시 구체적인 지시 대상을 갖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로 회화를 통한 자기-다중화 실험을 한층 더 세밀하게 구성한다. 그는 도달하고자 하는 완전한 세계를 그린 상태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어떤 세계로 갈 수 밖에 없는 방향만 가지고, 실패하면서 나아간다. 글: 김하연 각주 [1] 양문모 작가노트(2023. 8. 08)에서 발췌. (출처 = 마테리오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