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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박윤지 : LIGHT-SYNCED
Exhibition Poster
기간| 2023.04.13 - 2023.05.13
시간| 12:00 - 18:00
장소| 마테리오 갤러리/서울
주소|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94길 27-15/8층
휴관| 월, 화 및 공휴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566-5310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박윤지
정보수정요청

전시정보


  • 전시전경

    (이미지 제공 = 마테리오 갤러리)

  • 박윤지 fainter 02
    2023 피그먼트 프린트, 알루미늄 액자 66.65x100cm
    (이미지 제공 = 마테리오 갤러리)

  • 박윤지 tomorrow 09
    2023 피그먼트 프린트, 알루미늄 액자 50x33.3cm
    (이미지 제공 = 마테리오 갤러리)

  • 박윤지 the bone
    2017 FHD, 컬러, 6'27'’
    (이미지 제공 = 마테리오 갤러리)
  • 			세상 모든 사람이 빛을 붙잡으려 한대도 그 존재를 고갈시키진 못한다. 우리는 빛을 오직 부분적으로만 인식할 뿐이다. 빛은 결합, 반향 또는 분산을 일으키면서, 우리가 환상적이라고 느끼는 온갖 종류의 파동으로 번지고 시각을 자극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미술은 가시적인 차원 너머의 빛에 대한 지각과 상상을 시각화해왔다. 비잔틴 아이콘은 황제의 머리 뒤로 금빛 후광을 퍼뜨렸고, 바로크 회화의 화면은 빛과 어둠을 대비시켜 예수의 손끝을 밝혔다. 광학 기술이 발전하던 시대의 화가들은 자연으로 나와 대상에 빛이 시시각각 작용하는 찰나를 그렸다. 태양빛과 뒤섞인 건초더미에 모래가 손샅으로 빠져나가는 듯한 순간의 인상을 담았고, 광폭한 하늘에 굽이치는 별빛에 외로이 소용돌이치는 마음의 흔적을 수놓았다. 그렇게 미술의 역사에서 빛은 절대적이고 영원한 현존에서 가변적이며 감각하는 현상으로 이행했다.
    
    평면에 안착했던 빛은 반세기쯤 지나 그 바깥으로 다시 나온다. 미술가들은 네온관, 프로젝션, 라이트박스, 투사 혹은 반사 필터 장치 같은 인공적 빛을 활용해 전시 장소에 선재하는 공간성의 교란을 유도했다. 이때 빛은 작업의 재료로 삼아지거나 작업 자체로 제시되며, 물질적인 동시에 물리적으로 드러났다. 이는 빛의 외적 구조와 효과를 이해하려는 시도와 다름없었다. 그러한 구현 방식에는 관객이라는 요소도 중요하게 작동했는데, 여러 사람이 빛-공간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현상학적 장소성이라는 신개념을 발견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의 요지는 인간의 '경험'을 통해 추상적인 공간이 의미를 가진 구체적인 장소로 바뀐다는 것이다. 해당 관념엔 의문도 제기되었다. 마치 연극 무대 같은 상황에 노출된 관객이 지극히 즉물적이고 표면적인 감상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여전히 빛은 사물을 비추고 미술은 빛을 담으며 우리는 미술은 본다. 오늘의 우리가 보는 빛의 형상들은 우리 몸의 어디로 가닿는가. 세기를 거듭하며 반복되어온 무한한 연속선상에 다시 합류할까, 아니면 우리 몸 어딘가로 트인 시공 연속체의 문은 발견될까.
    
    박윤지 개인전 ≪light-synced≫는 물질과 비물질, 실체와 현상, 그리고 개념과 감각 사이의 간격[1] 안에서 ‘빛으로 상호 연동’을 시도한다. 전시 공간에서 작가는 이미지, 프레임, 물성을 경유해 자신이 빛을 마주하는 시간들을 펼치고 또 포갠다. 그는 작업의 주된 매체로 사용하는 사진과 영상을 각각이 연결체로 구성한다. 서로 유사한 이미지들 안에서는 시간의 순서가 깨지고 연속에 혼란이 일어나는데, 이는 전시를 통해 실행하려는 동기화의 매커니즘과 등치된다. 일관된 맥락의 화면들은 빛이나 시간 따위의 비물질적 물질이 가시적 현상계 외부에 존재함과 동시에 물리적 대상 속에 뿌리내렸음을 드러낸다. 그렇게 보는 사람과 보이는 사물 사이, 그리고 분명한 느껴짐과 불가형언의 느낌 사이에서 빛과 시간은 교차하고 뒤얽힌다.
    
    일례로 <tomorrow>(2023) 연작을 구성하는 자연광에 비친 순간들은 일정한 방향도, 규칙도 갖지 않는다. 다양하지만 엇비슷하고, 일회적이지만 관계성을 이룬다. 표면에 고인 물웅덩이에 일어난 파장들을 통해서 선후 관계를 파악해보려는 헛된 노력은 속절없는 시간의 속성을 더욱 강화할 뿐이다. 시간이 고정된 사진과 달리 움직이는 화면(moving image)으로 등장하는 <in silence>(2020)에서 푸른 빛점들의 형체 변화를 확인하려 한들, 그 빛들은 또다시 무수히 흩어지고 휘둘린다. 그렇게 박윤지의 사진과 영상은 단편적인 순간들이 접합하고 현재와 과거의 시차가 병치되는,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성을 마주하도록 한다. <fainter>(2023), <the bone>(2017)과 함께 배치된 설치 작업 <shattered frame>(2023)의 소재와 조형적 형태는 시지각적 연동을 한층 더 촉진한다. 박윤지는 해당 유사 프리즘을 – 너무 불가분하게 빛과 연계되어 있는 투영체를 – 통해 이미지에 탄성을 되돌려준다. 여기에 더해 좌우로 여닫을 수 있게끔 허용된 가동성은 물리적으로 늘 제한된 프레임에만 고정되었던 화면의 작용을 보다 확장시킨다. 그리고 투명한 매질 안팎으로는 작품과 공간의 일그러진 상이 맺혀 있다. 그것은 시선이 유동함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면서도 상이한 시간의 층위들을 늘 동시적으로 제시한다.
    
    ≪light-synced≫는 빛에게 어떤 가치론적인 지표도 부여하지 않으며, 빛을 위해 복무하지도 않는다. 그러는 대신 작업을 통해 빛을 받아내며, ‘자기수용적 지각’을 설정하고 지각을 개방시킨다. 퐁타니유(Fontanille)에 따르면, 자기수용적 지각은 외형에 대한 지각을 감정에 대한 지각으로 전이하는 조작으로 양쪽 간의 상호 연동을 가능케 한다.[2] 그는 메를로-퐁티(Merleau-Ponty)의 지각 개념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그러한 매개적 지각이 어떤 고유한 신체를 통한 자극으로 인해 인식과 감각을 서로 연결하는 매개적 지각이 발생한다고 본다. 그리고 다름 아닌 빛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고 주장하며, 눈앞에 보이는 대상이 빛을 통해 어떤 감응으로 기호화되는 과정을 다루는 ‘빛의 기호학’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역학은 전시에서 분명히 작동 중이다. 박윤지의 작업들은 흡사 뫼비우스의 띠의 형태를 하고서는[3] 이미지 안팎 간의 긴장을 풀어내고 있다. 겹쳐진 이미지들 위로 가장 깊숙한 곳에 시선을 꽂았을 때 그곳에서 뭔가가 출현하여 내게로 투사될지도, 그리고 나를 둘러싼 현재와 ‘나’라는 감각의 총체가 어제보다 더 유유히 땅 위를 디딜지도 모른다.
    
    글: 김하연
    
    (제공 = 마테리오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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